법조계에서 거짓말탐지기의 신뢰성 논쟁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 “수사기관이 부정확한 탐지기를 이용해 피의자를 압박한다”고 지적하자 수사기관은 “높은 신뢰도를 보이는 검사도구”라며 맞서고 있다. 아래 사진은 수사기관이 사용하는 휴대용 거짓말탐지기. [중앙포토] |
영화 ‘이태원 살인 사건’에서 변호사(오광록)는 살인 혐의로 구속된 미국시민권자 알렉스의 무혐의를 입증할 방법을 찾다가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제안한다. 검사(정진영)가 그 결과를 보면 알렉스가 범인이란 심증을 버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거짓말’ 반응이 나온다. 알렉스는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다. 하지만 대법원은 알렉스에 대해 무죄 판결을 한다.
영화에서 보듯 뚜렷한 물증을 찾기 어려울 경우 피의자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가 수사 과정에서 쟁점이 되곤 한다. 이럴 때 흔히 나오는 얘기가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해보자”는 것이다. 실제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이 검사를 받은 사람은 2008년 2719명, 지난해 1월부터 6월까지 1715명에 이르렀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40%가량 늘어난 수치다.
검찰은 같은 신문 다음 호에 반박 기고문을 실었다. 대검찰청 지형기 심리분석실장은 “거짓말탐지기는 미국의 관련 학회에서 92%의 신뢰도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 검사 도구”라며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에겐 오히려 억울함을 풀어주는 기능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검사와 재판 결과가 약 81.3%의 일치도를 보였고, 그간의 연구와 노력을 법원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박 변호사는 다시 재반박 글을 게재했다. 수사기관에서는 90% 이상의 정확성에 자부심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머지 오류 때문에 무고한 혐의를 뒤집어쓰는 사람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피의자와 고소인 모두 거짓말을 한다는 검사 결과도 수없이 봐왔다”고도 했다.
현재 대법원은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에 대해 사실상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5년 5월 대법원은 뺑소니 사건에서 “거짓말탐지기는 ▶정확한 측정 능력 ▶합리적인 질문과 검사 기술 ▶측정 내용에 대한 객관성 있고 정확한 판독 능력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제시한 뒤 무죄 판결을 했다.
◆“정확성 높다” vs “기술 완벽하지 않다”=경찰대 이웅혁 교수는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유전자 감식 다음으로 정확성이 높은 과학수사 기법”이라며 “기계가 사람의 감정을 판단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다면 법원에서도 충분히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청 경찰장비자문위원인 서강대 이덕환(화학) 교수는 “검사를 통해 확인되는 생리 변화는 거짓말뿐 아니라 검사를 받는 사람의 성격과 진술 내용에 따라서도 나타날 수 있다”면서 “지금의 기술은 그런 것들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준에 있지 않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권태형 형사공보판사는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는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참고 자료 정도로 쓰이고 있다”며 “몇몇 하급심 판결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고 해도 일반화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최선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