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의 증거 능력은 - 오마이뉴스(2001.12.09자)

by 전문검사관 posted Mar 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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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리상태를 측정, 거짓과 진실 여부를 밝혀준다는 ‘거짓말 탐지기’. 이것의 검사결과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9월28일 광주지검목포지청에 의해 유아 성추행으로 구속된 전남 무안의 ○○○어린이집 사무장 안모(35) 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의 검사결과가 그것이다. 더욱이 두 차례나 영장이 기각됐던 안씨의 경우 거짓말탐지기의 검사결과에서 양성반응을 보여 구속의 결정적인 자료로 활용됐기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오마이뉴스 보도 - ‘거짓말탐지기에서 아동심리학자까지’ 참조).

이 사건을 맡은 광주지검목포지청 이모 검사는 “일반적으로 성범죄의 경우 철저한 비공개 수사가 원칙인데 인터넷을 통해 사건이 공개됨으로써 오히려 증거확보에 애를 많이 먹었다”며 “그러나 95%의 정확성을 자랑하는 거짓말 테스트 등에서 양성반응을 보였고 모든 정황으로 보아 범인이 확실하다고 판단해 구속, 기소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씨측 정모 변호사는 “피고인은 계속된 경찰수사로 인해 심신이 극도로 지쳐 날마다 신경안정제와 피로회복제를 복용했으며, 거짓말탐지기 검사 전날에도 2∼3시간 밖에 잠을 못잔 상태에서 우황청심환을 먹고 경찰서에 갔다”면서 “검사자도 선입견을 갖고 자백을 강요했다”며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나온 잘못된 반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뚜렷한 증거가 없는 이번 사건의 재판에서 거짓말탐지기의 검사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 지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거짓말탐지기의 원리는 무엇인가

거짓말탐지기는 한 마디로 사람의 심리상태를 측정, 거짓과 진실을 가리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이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흥분·갈등·초조·불안·공포·긴장상태를 초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율신경, 특히 교감신경의 작용에 의해 여러 가지 생리적 변화가 야기된다는 것.

교감신경이 보다 강하게 작용하면 혈압이 올라가거나, 박동수가 빨라지거나, 땀이 많이 난다거나, 살갗이 쭈뼛해져 닭살같이 되거나, 눈동자가 커지는 등 생리적 변화를 불러온다. 이러한 생리적 변화 가운데 호흡변화 또는 심장 박동수의 변화, 혈압의 변화 등을 측정할 수 있는 휘지오그래프(Physiograph)의 일종이다. 

거짓말탐지기는 어느 정도 정확한가 

거짓말탐지기 기기 자체로서는 100% 거짓말과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기계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100% 가려내지 못하는 것으로 통계는 나와 있다. 95∼99%의 통계가 그것이다. 나머지는 진실인지 아닌지 거짓말탐지기 차트상에 나타난 반응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뜻의 ‘판정불능’이라는 것. 이는 검사를 하긴 했어도 검사를 안한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이같은 ‘판정불능’ 반응의 원인으로는 피검사자가 검사과정에서 제대로 조건화(Conditioning)가 안됐다든지, 질문구성(Question Formulation)이 작성 원칙대로 안됐다든지, 피검사자의 신체적·정신적 조건이나 검사 조건이 테크닉상 부적합한 경우 등이 꼽힌다. 

우리나라 법원 79년 첫 평가

어떤 종류의 감정서든지 그것을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자유심증주의의 원칙상 법관의 재량에 속하는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의 증거능력 유무에 대해 대법원이 처음 평가한 것은 1979년. 이른바 P양조장 술통 속 여고생 변사사건이다.

20여 명의 용의자를 대상으로 거짓말탐지기를 통해 검사를 한 결과, 김○○(19세)의 검사차트에만 거짓말 반응이 나오고, 나머지 혐의자의 차트에선 진실반응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탐지기 검사관이 김○○에게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 허위반응이 나왔다고 알려주면서 김○○가 비로소 자백을 해 사건의 전모가 소상하게 밝혀졌던 것이다.

1, 2심 검사결과 증거능력 인정

이 사건의 경우 제1심 법원인 전주지법군산지원 합의부는 검사결과서 등 모두 15가지의 증거를 들어 유죄를 선고했다(78 고합 21 사건, 1978. 10. 14). 제2심인 광주고법 역시 제1심의 태도를 그대로 유지,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원심이 증거로 채택한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 및 그 보고서의 증거능력에 관하여는 학설상 다툼이 있기는 하나, 이 사건 거짓말탐지기의 검사관인 송○○은 수년간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전담해 왔으며, 피검사자인 김○○의 동의를 얻어 검사를 하였으며, 검사결과 보고서는 동 검사관이 실시한 검사의 경과 및 결과를 충실히 기재하여 작성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에선 증거능력 불인정

그러나 대법원 형사2부는 1979년 5월22일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에 대한 증거능력 유무와 관련, “검사결과의 정확성을 보증할 수 있는 일정한 조건이 구비되지 아니한 거짓말탐지기 검사의 결과 및 그 보고서는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판시는 우리나라 법정에서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에 대한 판례의 효시였다.

대법원은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 및 그 보고서가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그 검사결과의 정확성이 보증되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또 그 정확성을 보증하기 위한 주·객관적 조건 7가지를 들었다.

거짓말탐지기의 증거능력 요건은

첫째, 검사기계의 성능이 우수할 것. 둘째, 피검사자의 검사 당시의 의식이 명료하고 그 심신이 건전한 상태에 있을 것. 셋째, 질문표의 작성과 질문의 방법이 합리적일 것. 넷째, 검사자가 특정의 전문지식과 훈련을 받은 자일 것. 다섯째, 질문 이외의 자극 및 영향이 없는 장소에서 검사가 행하여질 것. 여섯째, 그 검사결과가 전문가에 의하여 정확하게 판정될 것. 일곱째, 피검사자의 동의를 받아 검사할 것 등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검사실시 조건을 열거하면서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1심과 2심의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이같은 조건을 구비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고, 단지 검사관이 수 년간 이 분야에 종사했다는 점, 피검사자의 동의하에 실시했다는 점, 검사 경과와 결과를 충실히 기재했다는 점만으로는 유죄 인정의 직접 자료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시의 요지다.

전제조건 미충족 증거능력 ‘없음’

대법원은 또 86년 11월25일(선고 85도2208 판결) 거짓말탐지기의 검사결과가 사실적 관련성을 가진 증거로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일정한 심리상태의 변동이 일어나고 둘째, 그 심리상태의 변동은 반드시 일정한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며 셋째, 그 생리적 반응에 의하여 피검사자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가 정확히 판정될 수 있다는 세 가지 전제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마지막 생리적 반응에 대한 거짓여부 판정은 거짓말탐지기가 검사에 동의한 피검사자의 생리적 반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장치이어야 하고, 질문사항의 작성과 검사의 기술 및 방법이 합리적이어야 하며, 검사자가 탐지기의 측정내용을 객관성 있고 정확하게 판독할 능력을 갖춘 경우라야만 그 정확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같은 여러 가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에 대하여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진술 신빙성 가늠 ‘정황증거’ 기능

1987년 7월21일(선고 87도968 판결) 대법원은 거짓말탐지기의 검사결과에 대해 진술의 신빙성을 가늠하는 ‘정황증거’로만 인정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거짓말탐지기의 검사는 그 기구의 성능, 조작기술 등에 있어 신뢰도가 극히 높다고 인정되고 그 검사자가 적격자이며, 검사를 받는 사람이 검사를 받음에 동의하였으며 검사서가 검사자 자신이 실시한 검사의 방법, 경과 및 그 결과를 충실하게 기재하였다는 등의 전제조건이 증거에 의하여 확인되었을 경우에만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2항에 의하여 이를 증거로 할 수 있는 것이고, 위와 같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 증거능력이 있는 경우에도 그 검사결과는 검사를 받는 사람의 진술의 신빙성을 가늠하는 정황증거로서의 기능을 하는데 그치는 것이다”고 판시했다.

검사자의 선입견 있어도 증거능력 상실

위에서 열거한 전제조건 외에 거짓말탐지기 검사자의 선입견도 없어야 한다는 판결도 있다. 서울고법 제4형사부는 지난 96년 6월26일(사건 96 노 540) 피고인 이○○의 무죄를 선고하면서 그 이유의 하나로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의 부적정성을 지적했다.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와 관련, 재판부는 “전제조건이 입증되지 않고 피고인이 이를 증거로 함에 동의하지도 않아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피검사자가 사전에 언론, 소문, 수사 등에 의해 그 질문에 대한 선입견을 전혀 갖지 않았을 것이 전제로 요구되고 그 질문에 대한 수사를 받은 경우에는 그 결과를 신빙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최종 판단은 법관의 자유재량 

검찰과 경찰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난이 빗발친 가운데 어린이집 사무장 안씨가 구속되고, 일부에서 ‘여론몰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던 이번 유아 성추행 사건에서도 거짓말탐지기의 검사결과가 정황증거로 제시돼 있다.

하지만 어떤 조건에서 검사를 시행했는지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판례에서 보듯이 전제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해서 정확성이 보증되는 것도 아니다. 또 검사조건을 완벽하게 갖춰 검사를 했더라도 증거능력 유무의 판단은 자유심증주의에 의거, 어디까지나 법관의 자유재량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미국에서는 연방정부 뿐만 아니라 주정부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거짓말탐지기에 의한 검사결과.

이번 사건에서 유력한 정황증거로 제시된 거짓말탐지기의 검사 결과가 재판부의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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