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탐지기, ‘그 순간’에 엉켰다…그럴 리가? - 한겨레(2010.03.16자)

by 전문검사관 posted Mar 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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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탐지기, ‘그 순간’에 엉켰다…그럴 리가?

등록 : 2010.03.16 08:20 수정 : 2010.03.16 10:09

 

<엠.오.티 시즌 2> 진행자 김구라와 출연자 신해철, <놀러와>의 진행자 유재석이 전류가 통하는 벌칙을 받은 뒤 괴로워하는 모습, 거짓말 탐지기를 체험하는 모습(왼쪽부터).


기자가 ‘탐지‘해본 ‘진실 혹은 거짓’
“지금 애인 가장 사랑하나”에 “예”했는데 어!
‘놀러와’ 유재석 곤욕, ‘지붕킥’ 정보석 ‘망신’

“애인이 있습니까?” “네.”

“그 사람이 지금까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네.”

지난 3일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 정윤성 검사관을 만났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거짓말 탐지기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다는 말에 성사된 자리였다. 10여분의 설명이 이어지고, 바로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갔다.(예상대로 질문은 짖궂었다.) ‘내가 말하는 진실을 기계가 읽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이런 질문들이라면) 검사 결과를 자랑하고 싶다’는 바람들이 뒤섞였고 묘한 흥분마저 감돌았다. 정확한 결과를 위해 질문은 반복됐다.

 

기계에게 진실을 판명받는 시대. 최근 문화방송 <놀러와>에서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 아내와 결혼하겠다”는 유재석이 거짓말 탐지기로 곤욕을 치르며 웃음을 줬다.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도 정보석이 비서를 성추행했다는 혐의에 대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에 도전했다가 망신을 당하는 장면이 나왔다. 최근 방송된 <우리 결혼했어요>의 조권·가인 커플도 거짓말 탐지기를 ‘즐겼다’. 아예 거짓말 탐지기로 1억원의 상금을 주는 케이블채널 큐티브이의 <엠.오.티 시즌2> 같은 프로그램도 있다. 최근 가수 신해철은 이 참·거짓 쇼에서 “여성 100여명의 나체를 본 적이 있다”는 말로 인터넷을 달궜다.

거짓말 탐지기는 범죄 피의자와 승부하던 검찰청 한편에서 일반인을 검사하는 스튜디오로 이렇게 갑작스레 불려 나왔다. 믿음과 신뢰라는 단어는 촌스러움이라는 혐의를 뒤집어썼고, 그저 ‘쿨’하게 탐지기 한 판으로 진실을 가른다. “(미국의 정치인들을 보며) 말 한마디로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미국판 <엠.오.티>의 제작자 하워드 슐츠의 말은 거짓말이 일상이 돼 버린 시대를 역으로 보여준다.


 

<엠.오.티 시즌2> 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폴리그래프 정윤성 검사관이 하어영 기자에게 체험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20여분 뒤 결과가 공개됐다. 기자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각 질문에 대한 그래프의 변화 추이로 판명된다. 그래프는 질문에 따른 호흡(흉부, 복부 2개로 나뉨)과 맥박, 혈압, 손끝 전극 등 총 4가지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질문에는 평탄면을 그리던 그래프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에서 엉킨 게 바로 눈에 띄었다. 난감했다. “그럴 리가 없다”며 항의했다. 억울해하는 기자에게 검사관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기계는 거짓말 탐지기가 아니라 폴리그래프”라며 “몸의 생리적 변화를 다양한 그래프로 보여주는 기계일 뿐”이라는 말로 달랜다. “그럴 리 없다”는 대책 없는 항의가 멈추지 않자, “행위 여부가 아니라 판단을 묻는 경우에는 판정불능으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현재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기계가 진위를 전부 판단하지는 못한다. (기자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 것이다”라고 답한다. 검사관은 “그 질문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한 듯하다. 그 의도가 어떻든 몸의 스트레스 반응이 온 것”이라며 웃는다. 실제로 미국 폴리그래프 협회에 보고된 임상 결과는 9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 거짓말 탐지기에서 판정불능 결과를 유도해 내기 위해 정보 등을 다루는 특수요원들은 훈련을 받기도 한다.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돼 있다’는 말 속의 ‘결국’이라는 단어에 대한 우리의 조급증과 불신은 형사사건에나 쓰이는 기계를 티브이 화면 안으로 불러와 웃고 떠들고 또 누군가는 속을 끓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유재석의 억울함은 기자와 같은 것일까. 그는, 여전히 억울할까.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큐티브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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